작성일 : 19-05-13 11:48
[차이나로그인] 손기정 선수의 기차표와 압록강철교에 대한 단상
 글쓴이 : 길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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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선수의 기차표와 압록강철교에 대한 단상

글=김지환(인천대 중국학술원)

21세기는 중국의 시대이자 철로의 시대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현재 국내외의 뜨거운 이슈인 남북한 철도 연결, 철의 실크로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일대일로 등에는 모두 철도가 핵심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철도를 통해 유라시아 지역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연계하려는 ‘철의 실크로드’는 미래의 구상일 뿐만 아니라, 엄연한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였다.

경부철도와 경의철도가 중국철도와 시베리아철도를 거쳐 유럽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압록강을 횡단하는 압록강철교가 없으면 불가능하였다. 여기에서는 몇 년 전 공개된 손기정 선수의 기차표에 대한 단상으로 시작하여, 압록강철교가 가설되게 된 역정을 간단히 살펴보려 한다.

몇 년 전 국가기록원은 손기정 선수가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일본의 도쿄를 출발하여 베를린에 이르는 여정의 기차표를 공개하였다. 이 열차표는 손기정기념재단이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발견한 것이다. 열차표에는 ‘382번 孫基禎’이라고 적혀 있는데, 382번은 베를린올림픽에 참여한 손기정 선수의 등번호였다. 기차표를 발행한 주체는 일본철도원으로서, ‘시베리아 경유 유라시아 연계 승차선권’ 2등석, 요금 32.87$로 선명하게 표기되어 있다. 열차의 행선지는 東京-베를린으로 되어 있으며, 부산, 하얼빈과 폴란드의 바르샤바가 경유역으로 적혀 있다.

손기정은 도쿄에서 시모노세키행 열차를 타고, 여기서 다시 관부연락선으로 부산에 도착한 후, 경부철도에 몸을 실었다. 열차는 경성역을 지나 경의철도를 거쳐 손기정의 고향인 신의주를 지나 압록강철교를 넘어 안동(현재의 단동)에서 봉천(현재의 심양) 간을 운행하는 중국의 안봉철도를 거쳐 남만주철도로 연결되었다. 이후 하얼빈을 지나 중소국경에 위치한 치타역에서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접속한 이후 모스크바, 바르샤바를 거쳐 베를린에 도달하는 장거리 여정이었다.

열차표에는 기차와 증기선의 연계 운행이라고 적혀 있다.
​손기정은 평안북도 신의주 출생으로서, 16세 때 중국 단동에 있는 회사에 취직하였는데, 매일 신의주-압록강철교-단동에 이르는 20리 길을 달려서 출퇴근하였다고 한다. 1932년 신의주 제2회 경영마라톤대회에 참가해 2위를 차지하면서 육상명문으로 알려진 양정고보에 입학하게 된다. 베를린올림픽에 손기정과 함께 참가한 남승룡도 양정고에 다닐 때 하숙비가 모자라 전차삯을 아끼느라 혜화동에서 경성역 뒤에 위치한 학교까지 뛰어다녔다고 회고하였다.

베를린올림픽이 개최되기 전인 1936년 5월 21일 도쿄의 징구경기장에서 올림픽 마라톤대표로 파견하기 위한 최종선발전이 개최되었다. 그 결과 올림픽 출전권이 주어지는 3명 안에 손기정과 남승룡이 포함되었다. 당초 일본육상연맹은 일본인 위주로 팀을 편성하려고 계획하였으나, 울며 겨자먹기로 조선인 2명을 포함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선수단은 적응훈련을 위해 미리 6월 1일 도쿄를 출발하여 6월 17일 아침 최종 목적지인 베를린에 도착하였다. 보름여만에 현지에 도착하자, 마중나온 일본대사관 직원은 왜 조선인이 두 사람이나 포함되었냐며 투덜거렸다.

1936년 8월 9일에 개최된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대회에서 손기정은 2시간 29분 19초의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하였으며, 남승룡은 3위로 동메달을 차지하였다. 이들 두 청년은 일본선수단이 개최한 우승 축하연에 참석하지 않고, 조선인들끼리 몰래 축승회를 베풀었다. 축승회를 준비한 사람은 베를린에서 두부공장을 운영하며 독립운동을 후원하던 안중근 의사의 사촌동생 안봉근이었다. 그는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자 일제의 탄압을 피해 국외로 탈출한 후 독일인 여성과 결혼하여 독일에 살고 있었다.

축하연에 차려진 음식은 김치와 두부에 불과했지만, 벽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어 분위기가 자못 엄숙하였다. 손기정은 “이 때 나는 평생 처음으로 태극기를 보았다. 선명한 색깔로 나뉜 음과 양, 그리고 태극을 감싼 괘, 저것이 태극기로구나. 우리의 깃발이로구나. 온 몸에 뜨거운 전류가 흐르는 듯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고 회고하였다.
1910년에 일본이 한국을 강제 병합하여 식민지로 전락시키기 바로 전 해인 1909년에 일본내각회의는 ‘한국병합에 관한 건’을 의결하였는데, 이 안건의 제3조는 “한국철도를 일본철도원의 관할로 편입시키고, 일본의 감독 하에 남만주철도와 긴밀히 연계시켜 일본과 대륙철도의 통일 및 발전을 도모한다”라고 명시하였다. 즉 일본철도와 한국철도를 대륙철도와 연계하려는 정책을 강제 병합 전 해에 의결한 것이다.

압록강철교가 가설되기 전에 한국과 만주 간의 물류 유통은 주로 압록강 양안 간의 수운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선박에 의한 물류 유통은 자연지리적, 기후적 조건으로 불편이 매우 컸다. 압록강은 통상 7월 초순부터 8월 하순까지가 우기에 해당되어 홍수가 빈번하였다. 이 때 목재나 가옥 등이 유실되어 떠내려 오는데, 유속이 매우 빨라 사실상 선박의 운행이 어려운 실정이었다.

또한 매년 12월 초순부터 다음 해 3월 말까지는 동계의 결빙으로 선박의 운행이 불가하였다. 이 밖에도 결빙기와 해빙기를 전후한 각각 10일 동안에는 거대한 유빙이 떠다니며 흘러 내려오는데, 서로 부딪혀 깨지는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 정도였다. 이렇게 1년 중 절반 정도는 사실상 선박을 운행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따라서 한중 국경 간 화물 운송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철교의 가설과 직통철도의 부설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일찍이 1905년에 일본은 압록강철교를 가설하기 위한 제반 계획을 수립하고, 하저지질 조사, 수심 측량, 유수량 관측 등을 실시한 결과를 바탕으로 철교의 설계도 및 예산서를 작성하여 일본참모본부에 제출하였다. 이후 일본정부는 압록강철교의 부설 방법과 관련하여 세 가지 방안을 마련하여 심의에 부쳤다.

첫 번째, 단선철도교로 가설한다.
두 번째, 복선철도교로 가설하고, 이 중 한 선을 인도로 대용한다.
세 번째, 단선 철도의 양측에 인도를 가설한다.

이 세 방안 가운데 첫 번째 방안은 사람의 왕래를 위해 인도교를 별도로 가설해야 하는 필요성으로 말미암아 반대에 직면했다. 두 번째 방안은 후일 열차의 왕래가 증가하여 복선의 필요성이 대두될 경우 바로 이에 대응할 수 있어 편리한 반면, 다액의 예산과 오랜 시일이 소요되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세 번째 방안은 가설 비용이 적지 않지만 후일 복선이 필요할 경우 인도의 폭을 늘려 복선화할 수 있으며, 경비도 두 번째 방안보다 저렴하다는 점이 고려되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결국 세 번째 방안으로 철교를 가설하기로 결정하였다.

더욱이 압록강철교는 유빙과 홍수의 압력에 견딜 수 있도록 견고하게 가설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에 합당한 공법을 채택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에 따라 교각의 기초를 모두 철근 콘크리트로 통을 만들어 땅 속에 묻고 기초를 시공하는 潛函工法으로 가설하기로 계획을 수립하였다.

압록강철교는 당초 고정식 철교로 설계되었으나, 이후 설계를 변경하여 개폐식 철교로 가설되었다. 당초 고정식철교로 가설하려는 계획에 대해 북경 주재 미국공사와 영국공사가 일본공사에게 가교의 가설 지점이 안동 시가 및 각국 거류지의 하류에 위치하고 있어 이곳을 출입하는 선박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며, 철교를 개폐식으로 변경하여 가설해 주도록 요청하였다.

이에 일본정부는 미국, 영국 등의 통상상 이익을 존중하는 취지에서 철교의 설계를 개폐식 가교로 변경하기로 하였다. 이에 근거하여 1909년 3월에 설계 변경을 완료하고, 마침내 1909년 8월에 가설공사에 착수하였다.

압록강철교는 안봉철도의 개축을 전제로 가설된 것이었다. 안봉철도는 러일전쟁 기간 중 일본이 군사적 목적에서 부설한 안동과 봉천을 연결하는 경편철도였다. 일본은 중국정부를 압박하여 기존의 협궤로 부설된 안봉철도를 한반도철도 및 중국철도와 상호 연계할 수 있는 표준궤로 개축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아냈다.

1911년 10월 안봉철도의 개축과 압록강철교가 모두 완공된 이후 신의주와 안동 양 지역에 일본과 중국이 각각 세관을 설치하여 필요한 수속에 착수하였다. 압록강철교가 완공된 이후 비로소 열차가 조선과 안동 사이를 직통 운행할 수 있게 되었다.

압록강철교의 완성은 일본철도-관부연락선-경부철도-경의철도-압록강철교-안봉철도-남만주철도-중동철도(동청철도)-시베리아횡단철도의 연계가 마침내 가능하게 되는 철도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일본은 이를 바탕으로 대륙침략정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것이다.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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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에 대한 비하 발언을 해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일부 극우사이트에서 문 대통령 지지자들을 속되게 표현할 때 쓰는 용어를 사용한 건데,

나 원내대표는 서둘러 사과했지만, 비판 목소리는 커지고 있습니다.

우철희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 토요일 대구에서 열린 장외집회에 참석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방송 대담을 거론하며 공격했습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 지지자들을 향해 일부 극우사이트에서 사용하는 거친 표현을 그대로 쏟아냈습니다.

[나경원 /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그제) : 대담할 때 KBS 기자가 물어봤는데 그 기자 요새 뭐 '문빠', '달창' 이런 사람들한테 공격당하는 거 아시죠?]

파문이 커지자, 나경원 원내대표는 정확한 의미와 유래를 몰랐다며 사과했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의미를 모르고 썼다면 사리 분별력이 없는 것이고, 알고도 모른 채 한 것이라면 교활하다고 꼬집었습니다.

추가경정예산안과 민생 현안 논의를 위해 모인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도 도를 넘어섰다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홍익표 /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 (어제) : 정치 신뢰를 저하시키고 국민 불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자기 지지층을, 극우적인 지지층을 대상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식의 발언은 적절하지 않다….]

바른미래당도 극단의 정치가 '막말 전성시대'를 만들어냈다면서 자성을 요구했습니다.

[이종철 / 바른미래당 대변인 (어제) : 바로 잡아야 할 정치권이 박수 소리의 유혹에 오히려 부화뇌동하거나 도리어 부추기는 악순환입니다.]

한국당은 나경원 원내대표가 사과를 한 만큼 추가 입장 표명은 없다면서 논란의 확산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당의 이런 '설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전당대회 기간 5·18 망언에 이어,

[이종명 / 자유한국당 의원 (지난 2월) :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들에 의해서 폭동이 민주화 운동으로 된 겁니다.]

[김순례 / 자유한국당 의원 (지난 2월) : 5·18 유공자라는 이상한 괴물집단을 만들어내면서 우리의 세금을 축내고 있습니다.]

세월호 유족에 대한 폄훼와 당직자들에 대한 욕설 파문까지 일었습니다.

심지어 김무성 의원은 청와대 폭파까지 거론했습니다.

[김무성 / 자유한국당 의원 (지난 2일) : 4대강 보 해체를 위한 다이너마이트를 빼앗아서 문재인 청와대를 폭파시켜 버립시다. 여러분!]

연이은 파문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지층만을 겨냥한 험한 말이 계속되면서 비판의 목소리 역시 커지고 있습니다.

YTN 우철희[woo72@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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